[출처 : 야후!로 본세상, 문요한의 내 마음속 비타민]

긴 머리의 헤어스타일과 뛰어난 기지로 많은 이들의 우상이었던 맥가이버를 기억하십니까?
87년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외화의 주인공이죠. 그는 위기에 빠지면 일단 주위를 둘러보고 깊이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물품이더라도 그의 지혜와 손재주가 더해지면 마술처럼 해결의 열쇠로 바뀝니다. 그는 기존 액션물들이 폭력을 통해 악을 응징해 왔던 뻔한 내용에서 벗어나 과학적 지식과 재치로써 위기를 벗어나고 악당들을 소탕하는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어 우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마 그런 모습에 반해 공대나 자연대에 진학한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또 다른 주인공은 SF영화의 불후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터미네이터2의 T-800입니다. 지금은 주지사가 되어버린 강한 남성미와 우람한 근육질의 아놀드 슈왈츠제너거가 주연을 맡았죠. 하지만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지고 최첨단 기능을 갖춘 상대역의 T-1000에 비해 사실 T-800 터미네이터는 힘을 빼면 별다른 재주가 없는 구닥다리 로봇이었습니다. 그는 위기를 만나면 모든 상황을 힘으로만 정면돌파 합니다. 그러다보니 안쓰러울 정도로 처참하게 부서지고 일그러집니다. 물론, 영화이기에 적의 공격을 끝내 방어하고 미래의 지구사령관 존 코너를 지켜내지만 결국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마감하죠. 그러면서 그 유명한 "I'll be back."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오늘 난데없이 두 주인공을 소개한 것은 삶의 위기를 맞이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의 삶 앞에는 많은 위기와 벽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자신 앞을 가로막는 그 벽을 부수고만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 앞에 놓인 벽이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찬 강물일 수도 있고 한치 앞을 안 보이게 하는 안개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위기에 따라 대응방법이 달라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맥가이버처럼 주위의 사람들과 자원을 잘 활용하여 위기에 맞는 방식으로 슬기롭게 넘어서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터미네이터처럼 매번 자신의 힘으로만 우직하게 맞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과에서도 이런 분들을 봅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늘 흥분만 하다가 도처에 적을 깔아놓고 심지어는 가족들과도 의절한 사람, 주변의 조언은 무시하고 자신의 소신만 밀어붙여 엉뚱한 방향으로 돌진하는 사람, 세상은 급변하는데 예전에 배운 기술 한가지로만 승부하다가 위기에 빠진 사람 등등... 자신의 주위에 훌륭한 인생의 경험자들이 있는데도 이들은 독불장군이었습니다. 주위에서 배우기는커녕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조차 스스로 내차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위기에 빠질수록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뚝심으로만 이겨내려고 애쓰지만 결국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손에 든 것이 망치밖에 없다면 모든 것을 못처럼 다룰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 매슬로우(A. Maslow)의 유명한 말입니다. 손에 망치만 들고 있는 사람은 항상 똑같이 두드리는 방식으로만 문제를 풀어가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종합 공구함을 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 상황에 따라 가장 쉽고 바람직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것입니다.

삶의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할 수 없는 위기라면 어떻게 넘느냐가 중요합니다.
터미네이터처럼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파괴되어진 채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라는 말만 남긴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에는 속편도 없지 않습니까!

인생의 긴 여정은 맥가이버와 같이 주변의 사람과 자원을 잘 동원하는 지혜와 슬기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많은 책을 읽고 주위에서 늘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직접 경험해보고 배우는 시절은 이미 지난 지 오래입니다. 갈수록 전문화 되어가는 사회에서는 남들의 경험도 제대로 따라 배울 시간이 부족합니다.

정말 강한 사람이라면 혼자 이겨 내려고만 하지 말고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도움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다리면서 준비할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물러서거나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 오늘 풀리지 않는 삶의 위기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시는 여러분께 묻습니다.
당신의 지금 모습은 맥가이버입니까? 아니면 터미네이터입니까?
당신은 지금 드라이버로 해야 할 일을 망치만 붙들고 진땀 흘리는 것은 아닙니까?
지금 당신의 손에는 몇 가지 연장이 들려있습니까?

문요한(신경정신과 전문의)